화해 없는 변주곡,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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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없는 변주곡, 영화 <기생충>

배종철 3 4,327 2019.06.06 17:46

 


(스포일러 포함)


 


 


한국 영화 100주년, 그리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참으로 절묘하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영화 <기생충>이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됐다. 열두 살 때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워 왔던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꿈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고, 한국 영화사에도 큰 선물을 안겼다.


  


양극화를 소재로 한 영화가 화해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생충>에서는 화해 없는 평행선을 달린다. 블랙 코미디, 스릴러, 호러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성과 정교한 미장센, 탄탄한 서사구조는 관객들의 방심을 잠시도 허락하지 않는다. 봉 감독은 칸에서 가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기생충>을 이렇게 묘사했다. ‘광대가 나오지 않는 코미디, 악당이 나오지 않는 비극’. 우리네 삶도 그럴 것이다.





봉 감독이 밝힌 이 영화의 가제(假題)데칼코마니(Décalcomanie)’였다. 데칼코마니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대칭으로 무늬를 만드는 회화 기법이다. 가난과 부, 이 둘은 섞이지 못하는 이질적인 것이지만 부를 창출하고자 하는 욕망과 부를 증식하려는 욕망은 원초적인 데칼코마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재물을 향한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은 같은 속성의 무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선과 악 역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영화에서 부유층과 빈곤층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분명하지 않다. 선을 명분으로 악을 합리화하는 뒤엉킨 이중성(二重性)이 대칭으로 배열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이런 대칭성의 무늬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갈등과 웃음, 공포, 슬픔의 변주곡을 빚어낸다.




이 영화에는 많은 메타포(metaphor)가 숨어 있다. 우선 계단은 빈부의 양극성을 함의하고 있다. 반지하(半地下) 바닥에서 시작된 계단은 대저택의 2층 정점에 이르고, 대저택에서 다시 반지하방으로 사선(斜線)을 그리며 하강한다. 계단의 양극단이 만드는 기울기는 계층의 간격만큼 가파르다.


 


지상과 반지하, 지하 공간도 빈부의 메타포. 지상과 달리 반지하와 지하는 넘어서는 안 될 선()과 특유의 냄새를 갖고 있어서, 계층 간의 정체성과 부조화를 확연히 드러낸다. 반지하에 살고 있는 가난한 기택 가족은 부유한 박 사장 집에 기생(奇生)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그 집 지하에는 또 다른 기생충이 은거하고 있다. 이들은 같은 처지의 기생충들이지만, 숙주의 집에 구축한 생존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인다.


 


기택 가족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계획'이었다. 잘 짜여진 계획과 예행연습으로 대저택에 입성한 기택 가족은 박 사장 가족을 속이고 집사 문광, 운전기사까지 몰아내며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문광의 반격으로 계획은 흔들렸고, 물난리로 반지하방이 침수되면서 계획에도 없던 이재민(罹災民)의 처지가 된다. 실망한 기택은 대피소인 체육관 바닥에 몸을 누인 채,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라며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한다. 반면, 쏟아지는 비로 캠핑을 포기한 박 사장 가족은, 이튿날 가든파티로 계획을 바꾸며 전화위복을 즐긴다. 장대비가 쏟아진 똑같은 상황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맞닥뜨린 현실의 괴리는 너무나 컸다.  




봉합되지 않은 상처는 화를 부르게 마련이다. 선을 넘는 냄새를 풍기는 자들에게 박사장은 자주 역겨움을 느꼈고, 이에 분노한 기택은 결국 숙주인 박 사장을 살해한다. 숙주와 기생충의 불안했던 동거가 파국으로 끝난 것이다. 숙주가 소멸하면 기생충도 위태롭다. 숙주 역시 노동력에 기생해 이익을 추구하는 또 다른 기생충이다. 숙주와 기생충이 대치하는 미로에서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으로 통하는 길은 없다.




공생과 상생은 자연의 순리에 동조한다. 자연에는 분별이나 층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인간은 유위(有爲)를 무기로 모든 순일(純一)한 형질을 부와 가난, 행복과 불행, 선과 악의 이원성(二元性)으로 쪼갰다. 하여 인간에 오염된 산수경석이 자연의 본성을 되찾는 순간에도, 산수경석을 깎고 다듬은 인간의 탐욕은 이원성의 그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기우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반지하는 상승과 하락의 변곡점이다. 아버지는 반지하에서 지하로 추락했고, 아들 기우는 반지하에서 반전(反轉)을 도모하며 아버지와 모스부호를 나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계단을 밟고 지상으로 올라온 아버지와 재회하는 날, <기생충>의 기우와 세상의 기우들이 바라는 그 날은 올 수 있을까


 


엔딩 크레딧과 함께 객석이 환해지고, 어둠의 공간에서 깨어난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익숙한 걸음으로 통로 계단을 밟는다. 잠시 후, 문을 나서는 관객들 너머로 흐르는 OST 소주 한 잔’. 무거운 노랫말과 경쾌한 리듬이 텅 빈 객석과 어색한 조화를 이룬다.


  


쓰디쓴 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빨간 내 오른쪽 뺨에 이제야 비가 오네.


 


 


배종철 대기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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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엠디포스1 2019.06.06 19:09
이번주에 꼭 기생충 영화를 봐야겠네요  영화를 미리본듯한 자세한 묘사를 해주셔서
도움이 많이되고 더 보고싶은 생각이 드는군요..감사합니다.
송욱 2020.09.17 16:48
기생충 영화저도 봤어요.볼때는 잘 모르겠던데요.상받고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아서
다시 한번 봤더니 그런 느낌을 받겠더라고요..새로운 시각에서 보는것이 참 중요하다는걸 느껴보는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엠디솔루션 2020.11.27 17:20
저도 기생충 영화 두번정도 봤어요.첨엔 대충대충 봤거든요.ㅎㅎ
시상식에서 상도 받고 나서 다시 보니 보는관점이 달라지더라구요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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