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한 조각

▶칼 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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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한 조각

배종철 4 1,977 2020.09.14 13:54
부산 거제동의 한 자그마한 식당. 열무비빔밥과 콩국수 등 예닐곱 가지의 소박한 상차림표가 보인다. 2주 전에 왔을 때는 손님이 꽤 많았지만 오늘은 점심 무렵인데도 눈에 띄게 손님이 적다. 자매로 보이는 A, B 두 사람이 주문 받고 요리하고 음식을 나른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많이 줄었지요?”
내 질문에 A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매출이 30퍼센트 정도 줄었어요. 그래도 단골 분들이 많아요.”
단골이 많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식당 벽면 메모판에 적힌 글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모든 메뉴는 곱빼기로 주문하셔도 요금은 같습니다.’
‘계란프라이는 몇 개를 드시든 무료입니다.’
물론 자매의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도 손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이렇게 주문을 받아도 괜찮으냐고 묻자 그녀는 말했다. 
“손님들마다 드시는 양이 다 달라서요. 계란프라이는 몇 개 드릴까요?”

부자들을 동경해온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어렵사리 한 부자를 만나 성공비결을 물었다. 젊은이를 잠시 말없이 쳐다보던 부자는 큰 수박 하나를 가져왔다. 그리고 수박을 크기가 다른 세 조각으로 잘랐다.
“이 세 조각 중에서 자네는 어느 것을 고르겠는가?”
“물론 제일 큰 것을 고르겠습니다.”
부자는 가장 큰 수박 조각을 젊은이에게 주고 자신은 가장 작은 조각을 먹기 시작했다. 젊은이가 한참 먹고 있을 때, 작은 조각을 다 먹은 부자는 남은 중간 크기의 수박을 집어서 먹었다. 부자가 먹은 두 개의 수박 조각을 합치면 젊은이가 먹은 가장 큰 수박 조각보다 더 컸다. 처음에 부자는 젊은이의 것보다 작은 수박 조각을 택했지만 종국에는 젊은이보다 더 많은 양의 수박을 먹은 것이다.
부자는 젊은이에게 자신의 성공 비결을 얘기했다.
“성공하려면 먼저 버리는 법부터 알아야 한다네. 눈앞의 작은 이익을 버릴 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상대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그를 대접하라‘는 백금률도 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고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큰 수박 조각은 고사하고 작은 수박 한 조각마저 고를 수 없다면 마음은 혼미해지고 타인을 배려할 여유도 없어지게 마련이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는 옛말이 유난히 가슴에 꽂힌다.
이런 힘든 때인데도 식당을 운영하는 자매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손님이 장난스레 그냥 나가려고 하자 장단 맞춰 배웅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어느새 홀에는 빈자리만 남았다. 의자를 정리하던 B가 얘기를 꺼냈다.
“요즘 배달을 원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배달 시스템이 안 되어 있거든요.”
배달 시스템까지 갖출 여력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밝은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그동안 수도권을 중심으로 큰 폭으로 늘었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줄고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늘부터 2주 동안 수도권 거리두기가 2단계로 완화되고, 음식점과 카페, 헬스장 등의 영업시간 제한도 풀린다.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들의 고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인도의 수행자 샨티데바가 이런 말을 했다.
“해결책이 있다면 불안해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해결책이 없다면 불안해한들 무슨 소용인가?”
해결책이 없어서 내려놓기 보다는, 해결책으로 불안을 걷어낼 수 있기를 우리는 바란다. 항산(恒産)이 회복되고 공동체가 제 기능을 하는 날이 다시 오기를 기다린다. 하여 거제동 식당의 자매처럼 수박 조각을 기꺼이 양보하는 일상의 항심(恒心)을 되찾고 싶은 것이다.


배종철 대기자 (칼럼니스트)

Comments

중소넷 2020.09.15 10:10
강(강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유(부드러움)라고 했던가요?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강한 메세지를 전해주는 배국장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강함은 갖기 쉬우나 유함은 정말 갖기가 어려운가 봐요ㅠㅠ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시작전에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
우흔철 2020.09.15 10:18
좋은글 봤습니다. 2.5에서 2로 되어서 정말 다행이긴합니다만 풀어줬다고 지킬걸 안지키면
소용없단생각이 듭니다. 저먼저 철저히 지켜야겠단생각을 해봅니다.
송욱 2020.09.17 11:18
좋은글 잘 봤습니다. 부산에도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죠.늘 조심하시고요..
비소식이 있네요..오늘하루도잘보내세요^^
엠디솔루션 2020.11.27 17:18
좋은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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