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토지면에 ‘운조루(雲鳥樓)’라는 전통가옥이 있다. 조선 영조 때 낙안군수 류이주가 지은 고택이다. 이곳에 통나무 속을 파서 만든 뒤주가 있는데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누구나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니, 가난한 이웃은 누구든지 와서 쌀을 가져가라는 넉넉한 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류 씨 집안은 이 뒤주를 행랑채 후미진 곳에 두었다. 사람들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다녀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는 뜻이 담긴 ‘운조루’와 행랑채 뒤주의 ‘타인능해’는 묘한 공명(共鳴)을 이루고 있다.
우체통 뒤주도 있다. 쌀이 아닌 성금이 담긴 뒤주다. 며칠 전, 경남 합천군의 한 우체통에서 100만 원이 든 봉투가 발견됐다. 봉투에 붙은 메모지에는, 주위 분들 한 번쯤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 기부천사는 4년 전부터 우체통 두 곳에 아홉 차례나 봉투를 넣어 530만 원을 남겼다고 한다.
대체로 우리나라는 나눔의 문화가 영글지 못했다. 먹고 살기 바빠서 겨를이 없고, 여력이 있으면 그때 생각하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흔하다. 자선단체가 성금을 사사로이 유용하여 후원자들의 선의를 저버리고, 어떤 이들은 자신을 포장하거나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웃돕기 행사에 나선다.
‘청년 기부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박모 씨. 그는 4년 전 1,5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400억 원까지 늘렸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수익금을 모두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뒤, 실제로 4년 동안 18억여 원을 기부했다. 하지만 투자 수익을 부풀렸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고, 투자금을 가로챈 사기 혐의로 올해 초 구속되었다. 처음에는 수익을 올렸지만 이후 손실이 거듭되면서 다른 사람들의 투자를 받아 기부를 계속해온 것이다. 그는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좋았다면서 자신의 허세를 뒤늦게 후회했다. 피해액만 24억여 원. 재판 중인 박 씨를 위해 탄원서를 쓴 사람들도 있다. 그에게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다.
사르트르는 기부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 철학자다. 그는 ‘타인은 나의 지옥’이라는 경구(警句)를 남겼다. 그에 따르면 타인은 나의 주체성을 잃게 하고 나를 객체로 만드는 존재다. 서로 주체가 되고자 하는 이런 지옥 같은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그는 익명의 기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익명으로 하는 기부는, 기부자가 수혜자를 객체화하는 독성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해주었다'는 상(相)에 머무르지 말고 복을 지으라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얘기하고 있다.
나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자신을 밝히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홍콩 배우 주윤발이 전 재산 8,1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하여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내 꿈은 행복하고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진정한 부(富)’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날개 없는 천사’로 불리는 션, 정혜영 부부의 기부액은 45억 원에 이른다. 이들 부부가 식당에서 식사를 마쳤을 때 종업원이 대신 계산을 하고 기부에 동참하겠다면서 후원금 봉투까지 내민 일화도 있다. 유명인의 선행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커서 이렇게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웃을 돌아본다는 건 재물이 있어야만 가능한 게 아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젊은 여성이 쪼그려 앉아 할머니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모습이었다. 맨발로 길을 걷던 치매 할머니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어준 것이다. 이런 사연도 있다. 중국집 배달원이 빈 그릇을 찾으러 갔다가 깨끗이 씻긴 그릇 안에서 쪽지를 발견했다. ‘저희가 밥을 따뜻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옆에 놓인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초등학생 어린 소녀의 작은 선물이었다. 배달원은 그 자리에서 한 시간 동안 울었다.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테레사 수녀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보여준 뒤, 침의 면역항체 수치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영상을 보기 전보다 학생들의 항체 수치가 급격히 상승했고 최대 몇 주 동안 지속되었다. 이른바 ‘마더 테레사 효과’다. 선행을 하거나 심지어 남이 선행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인체의 면역기능이 크게 높아져서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황지우 시인은 <게 눈 속의 연꽃>이라는 시에서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그러나 이기심은 이타심이 아니다’고 했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주말 운조루에서 ‘운조루 뒤주가 열릴 때’라는 이름의 문화축제가 열렸다. 한 지역 예술인은 뒤주에서 나온 한 줌의 쌀이 누군가의 밥상에서 꽃으로 핀 모습을 떠올렸고, 그것을 구현해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밥이 꽃으로 피어’라는 바느질 공예작품이었다. 한 줌의 쌀, 한 그릇의 밥이 꽃을 피우듯, 우리도 마음의 뒤주에서 ‘타인능해’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배종철 대기자 (칼럼니스트)